오늘 내린 비는 유난히 반가웠다. 대구의 산불이 며칠째 이어졌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거웠는데, 이 비가 산불을 진화시키는데 작은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. 단비를 맞으며 회원들과 함께 마트 장보기와 가벼운 산책을 해보았다.

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챙기고,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며 함께 걸었다. 평범한 듯 보이는 마트 나들이였지만, 그 안엔 회복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. 회원들은 각자의 장바구니를 들고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고르고, 계산대에 줄을 서서 스스로 계산을 마쳤다. 아주 일상적인 모습이지만, 그 일상을 되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,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.

마트를 나와 돌아오는 길, 비는 여전히 조용히 내리고 있었고, 그 빗소리에 섞여 한 회원의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들려왔다. 예전에 나는 정신과 응급실에서 근무했었는데 그분도 그곳에 왔었던 적이 있다는 말에 잠시 놀랐다. 하지만 본인은 그 당시의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. 아마도 그만큼 힘든 정신과적 응급 상황 이었을 것이다. 지금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은 눈을 맞추며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, 그 혼란의 시간을 지나 이렇게 고요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서 있는 것을 보며, 사람의 회복이란 참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.

문득, 내가 응급실에서 근무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. 정신과적 위기 상황에 놓여 있던 환자들, 눈빛도 초점도 없던 표정들, 자해나 환청에 시달리며 울부짖던 그 모습들. 그 시간 속에 있던 이들이 단지 "환자"가 아닌, 이렇게 다시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, 실습 중에 직접 마주하며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.

앞으로 정신과 간호사로써 응급 상황 속에서 마주하는 이들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. 순간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, 그들 안에도 회복의 가능성과 평온한 내일이 숨어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.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, 그 비가 모든 것을 잠시 멈추게 하듯이, 그들의 삶에도 멈춤과 치유의 시간이 찾아오기를 바래본다.